산세베리아

산세베리아

친구가 내게 식물 하나를 선물하였다. 꽃무늬로 사방에 돋을 새긴 작은 화분에 네 가닥의 잎이 단도처럼 쭉 뻗어 오른 것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산세베리아(Sanseviera, Bowstring Hemp), 혹은 천년란(千年蘭)이라고 부르고, 꽃말은 관용이라고, … 전자파를 차단해주는 식물이라며 어디서 정보를 듣고는, 컴퓨터 앞에 많은 시간 동안 앉아있는 나를 배려해서 사 온 것이다. 난 동물들뿐 아니라 식물을 기른다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아니 주제넘은 짓이라고 생각을 했다. 간혹 길을 가다 보면 멋진 옷으로 잘 차려 입고 쇠사슬 목걸이를 채워 강아지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군상들을 보게 되는데,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침을 뱉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곤 했었다. 식물이라고 다를까? 차라리 요긴하게 쓸만한 물건을 선물하지, … 살아있는 식물은 별로 달갑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내 건강을 걱정해준 마음도 있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눈에 띄지 않게 책상 한 구석에 밀어 놓았다. 전자파를 차단하려면 가급적 스크린과 내 눈 사이에 있어야 할 텐데, 저만치 구석에 숨어 있으니 선물의 용도는 이미 무의미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물을 주거나 돌보지 않으니 저 존재는 점점 잊혀지고 있었고, 결국 나는 저 식물이 정말로 저기에 있는지 조차 의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어쩌다가 스크린이 눈이 부셔, 녹색을 보면 괜찮아진다는 말을 떠올리고는 잠깐씩 응시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게 쳐다보는 동안에도 나는 저것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되었다. 저것이 내 책상 한 구석을 점유한지 몇 개월이 지났는데, 또 나는 물도 한 번 제대로 뿌려본 적도 없는데, 어느새 이파리가 세 가닥이나 자라나 있는 것이다. 하나는 가장 높이 솟아 올라 있었고, 나머지 둘은 서로를 정답게 감싸 안으며, 체조를 하듯이, 아니 탱고를 추듯이 비틀어져가며 자라나는 중이었다. 처음엔 이파리가 네 가닥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식물인줄 알았는데, 지금 자세히 보니 두 뿌리를 가진 두 개의 식물, 즉 한 쌍의 식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한 쌍 중 한 뿌리에서는 뾰족이 높게 치솟아 투사의 모습을 한 이파리가 생겨나고 있고, 다른 뿌리에서는 두 가닥이 무용수들처럼 나선형을 이루며 꼬여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뿌리의 저 아래쪽을 돋보기로 자세히 보니, 이미 또 다른 두 가닥의 이파리가 조금씩 조금씩 돋아나는 중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처음에도 그랬지만, 난 아직도 저 식물의 본래 모습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모습일지 전혀 예측조차 할 수 없다. 원래 한 뿌리가 두 뿌리로 변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두 뿌리였는지, 아니면 세 뿌리가 될지, 아니면 그 이상이 될지, 아니면, 결국에 가서는 하나의 거대한 뿌리에 매달려 공존하고 있는 잔가지들인지, … 그들 자신도 모를 것이다. 이제는 화분이 아주 작게 느껴졌다. 저것들이 자라나 언젠가는 저 단단한 화분도 깨트리게 되겠지. 화분이 너무 단단해 깨트릴 수 없다면, 그냥 죽어버리던가.

저렇게 무럭무럭 커 가고 있는 걸 보며, 저 식물이 나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환경이 맞지 않아 죽어가는 식물을 보고 있으면, 마치 누군가로부터 거절을 당한 듯한 불쾌함이 느껴진다. 난 처음에 저것이 내 방에 들어온 순간, 얼마 되지 않아 죽어버릴 것이라고 단정했었다. 내 몸에서 풍기는 냄새라든가, 호흡이라든가, 정신과 영혼이 오염시킨, 이 음산하고도 폐쇄적인 방안의 공기를 참지 못하고 저것이 질식해 버릴 것이라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나 조차 숨이 막혀 버릴 것이라고, … 정말로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저 미물에게 어리석은 희망을 품지 않고, 오히려 귀찮아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죽어가거나 시들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일은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살아있는 것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내겐 유쾌한 일이 아니다. 특히 식물의 죽음에는 동물과는 전혀 다른 서글픔이 있다.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나의 거부는 절망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바래가고 있는 녹색의 식물들을 방 안에 들여놓으며, 또 하나의 절망과 죽음을 하루 하루 바라보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나를 비웃듯이 저것이 저렇게 버젓이 고개를 쳐들고 살아있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잠들어 있거나, 내 의식에 도취되어 몽롱해져 있거나, 어떤 일에 열중해 있는 동안에도, 저 식물은 내 옆에서 꿈틀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 방에는 스스로 달라져가는 것이 나 말고도 또 있었던 것이다. 살아있는 것은 의식을 넘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의식을 하든, 하지 않든, 싫든, 좋든,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우리와는 무관하게, 우리를 외면하며, 자신 안에서 스스로 살아간다. 어느 날 내 의식에 주의력이 생겨나서 바라보고 이해한 것은 그 결과일 뿐이다. 식물은 그 자체가 시간-존재이다. 지각할 수 없는 흐름 속에서, 동물의 자연에의 투쟁이나 공간적 운동보다도 더 급진적이고 강렬한 삶이 거기에는 있다. 조용히 움직이는 식물을 바라보며 우리는 ‘비의식'(non-consciousness)에 대해 경이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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