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에 대하여

의식에 대하여

들뢰즈(Gilles Deleuze)가 스피노자의 윤리학에서 도출한 “의식”의 개념은 이러한 것이다.

의식은 어떤 행위와 작용의 결과로서 주어진 실재를 하나의 전체로 이해한다. 그러나 의식은 전체를 이루는 “살아있는 부분들”이 서로 결합하거나 해체되는 관계들의 원인과 본질(원인들의 질서)은 이해하지 못한다. 원인과 본질은 이해하지 못하고 그 결과로서 주어진 전체만을 수용하기 때문에, 의식은 “부적합한 관념들, 혼란스럽고 절단된 관념들, 즉 자신들의 고유한 관계들로부터 분리된 결과들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Deleuze 34-35).

의식은 세 가지 환상으로 이루어지고 작용한다.

1) 의식이 처음 포착한 것은 신체들과 관념들간에 일어나는 작용의 결과이기 때문에, 사물의 질서를 역전시켜 이해한다(목적인의 환상).

2) 신체들간에 형성되는 관계의 질서로부터 파생된 결과에 대하여 의식은 자기 자신을 운동의 제1원인으로 간주하면서, 자신이 신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여긴다(자유명령이라는 환상).

3) 그러나 제1원인으로서 신체에 대한 지배력을 확인할 수 없거나, 목적에 대한 원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상상할 수 없게 되면, 보다 큰 전체성으로서, 모든 사물들의 목적으로서, 그리고 자유명령의 주체로서, 이성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 신에게 그 원인을 돌린다(신학적 환영).

의식은 이 세 가지 환상들과 분리될 수 없다. 원인을 알지 못하는 의식은 외부의 다른 신체와 다른 관념들이 우리에게 끼친 결과들만을 수용하고, 자기가 보기를 원하는 결과를 원인으로 상상한다. 가령, 우리가 어떤 것을 욕망하면, 의식이 그 대상을 좋은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 판단의 결과로서 우리는 그것을 욕망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이 관계를 반대로 이해한다. 그에 따르면, “욕구는 각각의 사물, 즉 연장에 속하는 각각의 신체와 사유에 속하는 각각의 영혼, 각각의 관념이 자신의 존재 속에 계속해서 머무르려는 노력(코나투스 conatus)에 다름 아니다”(Deleuze 36). 자신의 존재 안에 머무르려는 노력은 다양한 다른 신체들과 조우하면서 매 순간 우리를 강요하거나 촉발하는 정동(affects)에서 비롯한다. “결정인자로서의 이 정동은 필연적으로 코나투스에 대한 의식의 원인이 된다”(Deleuze 37). 의식의 원인은 정동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기쁨이나 슬픔(즉 우연히 만나는 신체들간의 결합하려는 관계나 해체되려는 관계)의 주기적인 반복은 코나투스의 정동을 발생시키고, 이 정동의 ‘이행'(즉 보다 큰 전체에서 보다 적은 전체로, 혹은 보다 적은 전체에서 보다 큰 전체로의 이행)에서 파생되는 지속적인 감정, 이것이 의식이다. 다시 말해 의식은 관계들의 결합과 해체에 따라 변형되는 신체와 관념의 이행과 변화로부터 발생하는, 이행과 변화에 대한 감정(코나투스의 저항감)이다. 의식은 정동의 결과이며, 그 결과들의 법칙이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욕망하는 것은 의식이 “그 대상을 좋은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가 그것을 좋은 것이라고 판단할 때는 우리가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원하고 욕구하고 욕망하기 때문이다.”(Deleuze 36)

의식은 신체들의 결합(기쁜 관계)과 해체(슬픈 관계)에 따른 이행과 운동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그것은 관계들의 결과만을 수용하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감정을 통해 일정한 법칙(선악과 같은 도덕관념), 자신의 한 기능으로서의 도덕적 가치를 도출한다. 예컨대, 자신의 신체와 사과가 어떤 관계인지 알지 못하는 아담은 신의 금지의 의미를 도덕적 명령으로 받아들인다.

참고문헌

Deleuze, Gilles. Spinoza: Practical Philosophy. trans. Robert Hurley. San Francisco, City Lights Books, 1988.
Spinoza, Benedict de. A Spinoza Reader. ed & trans. Edwin Curley. New Jersey, Princeton UP,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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