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와 우리

UFO와 우리

지아 장커(賈樟柯)의 영화 “Still Life (三峽好人)”(2006)에 펼쳐진 광경들은 마치 외계인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낯선 나그네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마을을 산마루에서 관망하듯, 마천루-쇼트라고 이름 붙일만한 전체성이 깊숙히 배어 있다.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볼때, 막노동꾼인 한샨밍이 높은 곳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장면은 놀랍기 그지 없다. 마치 역사적 운명을 떠맡은 한 전사의 고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존재의 역설이란 바로 그가 민중들 속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들로부터 우뚝 솟아 마천루의 지각을 소유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는 이상망측한 장면이 두 개가 나온다. 처음엔 야릇한 빛을 내면서 하늘로 날아다니는 괴물체가 등장한다. 이 괴물체는 샨밍의 에피소드에서 센홍의 에피소드로 첫 번째 전환되는 순간에 나온다. 그것이 날아다니면서 서로 무관한 두 주인공이 마치 같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말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하늘 높이 치솟은 십자가라든가, 허공에서 펄럭이는 국기를 바라보며 하나의 시간과 하나의 공간을 상상하듯, 관객은 그 괴물체를 통해 서로 떨어진 인물들이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무관하게 살아간다. 두번째는 센홍의 에피소드에서 나온다. 센홍이 남편을 찾아와 잠시 동안 그의 친구집에 머무는데, 근처의 산 위에 우뚝 서 있었던 특이하게 생긴 철탑이 갑자기 불을 내뿜으며 하늘로 날아가는 장면이다.

원래 지아장커의 이 작품은 도큐멘타리 요소가 아주 짙은 사실주의적 분위기의 작품이다(이미 싼샤(三峽)의 댐건설과 중국 노동자들에관한 도큐멘타리 “동(東)”이 만들어졌는데, 이 작품과 연관이 깊다). 자연을 파괴하며 개발 이데올로기에 흠뻑 패인 중국의 자본주의, 그리고 그 체제의 음영 아래 벌레들처럼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며, 헤어진 가족과 그리운 짝을 찾아 헤메는 군상들, 남편을 찾는 일에 피로해 끊임없이 물을 먹어대는 센홍, 아내와 딸 생각에 혹은 아슬아슬한 광경들에 말문이 막힌 샨밍, 혼자 남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군상들, … 어느모로 보나 사회 비판적 요소가 짙은, 혹은 개인의 삶에 관한 사실주의 작품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이 사회적 관계를 다룬다(<소무>에서의 소매치기, <플랫폼>에서의 가무단, <임소요>에서의 실업자 등).

그런데 그 두 괴물체(아마도 UFO)가 등장하면서, 관객의 그러한 믿음은 불안해진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영화를 SF 전쟁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감독은 무협물을 의도했다고 한다). 산업사회 이전의 산과 자연 속에 난데 없이 떨어져버린 첨단 기계문명(컴퓨터, 핸드폰, 기중기 …), 더 이상 인간의 주거공간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다른 무엇인가를 위해 세워지는 듯한 거대한 건설물들, 시야를 압도하는 기계 덩어리들, 알 수 없는 존재의 어떤 엄청난 음모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생기를 잃은 노예나 벌레처럼 맴도는 슬픈 얼굴의 인간들, 유난히 땀을 흘려 구릿빛 피부를 하고 먼 곳을 주시하는 멍한 눈빛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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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외계의 어떤 존재가 만들어 놓은 낯선 건축물들 위에서, 아래에서, 또 그 안에서, 그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지거나 세워지는 것을 무심히 바라보며 서있다. 샨밍과 센홍의 멍해진 동공처럼, UFO를 보고도 놀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지아장커는 어느 인터뷰에서, 난데 없이 등장하는 초현실적 UFO를 통해 인물들의 고독한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지만(아마도 Michelangelo Antonioni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특히 그의 영화 L’eclisse에서의 그 텅빈 아파트단지 장면들이 그렇다), 우리의 관심은 그것이 아니다. Jean Luc Godard의 Alphaville과 마찬가지로, SF는 환타지가 아니라 사실주의의 한 갈래라고 규정해야 할 것 같다. 이제 남은 것은 전사의 탄생이 아닐까? 현재의 중국이 아니라, 미래 사회의 태동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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