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9/04/18 사진의 무의식 (4)
  2. 2008/12/12 니체(Friedrich Nietszche)의 수염 (6)
  3. 2008/09/18 독서와 테크놀로지
  4. 2007/03/04 아우라(aura)
  5. 2007/03/03 진실은 구체적이

사진은 인간의 시각이 기계적인 메커니즘으로 사물에 접근하게 한 최초의 매체이다. 인간의 지각은 시시각각 변덕스럽고, 쉽게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며, 개인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믿을만한 객관성을 보증하지 못한다. 개인이 목격한 어떤 사건은 법정에서 증언적인 가치로서 참고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명백한 의미에서의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객관성을 입증하려면 목격자 자체의 신뢰성을 증명해야 하고, 그의 증언에 뭔가 추가로 비인간적인 절차가 필요하다(법은 근본적으로 인간을 불신한다). 예컨대 과학적 증명과 같은 신의 지각에 의존하든가, 아니면 사진이나 동영상과 같은 기계의 지각이 첨부되어야 하는 것이다(디지털 시대엔 또 다른 문제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카메라는 그 기계의 본성상 객관성의 도구이다. 애초에 사진이 등장한 이후, 그 객관적 성질 때문에 인간은 세계를(인간 자신조차도) 차갑고 비정한 그 무엇으로 경험하기 시작한다.

사진의 객관성은 눈에 보이는 사물에만 관계한 것은 아니었다. 사진은 인간이 지각할 수 없는 무의식적 영역 조차도 객관적인 그 무엇으로 만들었다. 가령 우리는 물건을 쥐거나 길을 걸을 때 손동작이나 걸음걸이를 막연히 추측만 할 뿐이지 손놀림과 발 동작의 세세한 부분까지 포착하고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카메라는 고속촬영이나 렌즈와 같은 보조장치를 이용해서 이들을 잡아내고 보존한다.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말했듯이, 정신분석이 인간의 충동적 무의식을 밝히는 분야라면, 카메라 기술은 사물의 "시각적 무의식"(the optical unconsciousness)을 밝힌다.

인간이 시각적 무의식을 인식하자마자, 마치 정신분석에 의해 꿈의 세계가 열린 것처럼, 현실은 인간이 바라보고 생각했던 것 이상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현실은 기괴하고 부조리해 보였으며, 더 이상 인간이 상상했던 균형과 비례를 갖춘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카메라 같은 기계가 펼쳐놓은 현실은 기계가 주는 정밀한 대칭의 이미지와는 반대로 뒤틀리고 일그러져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카메라 기계가 보여준 시각적 무의식이 불균형적이고 뒤틀린 현실을 제공하긴 했지만, 오히려 다른 한편 인간이 대상에 깊숙이 파고들어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주었다. 특히 인물사진에서 그러한 경향은 두드러진다. 사진을 찍는 예술가나 사진에 찍히는 모델의 의식을 넘어서는 시각적 무의식은, 그 인물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어떤 본성을 몸 밖으로 빠져 나오게 한다. 사진에 찍힌 인물은 그 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독특함을 외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자기 자신의 무의식적 본성 즉 물리적(육체적) 외양을 넘어선 그의 역사 전체에 비견될만한 특유의 시간을 무심코 드러낸다.

다음 사진을 보자.

이 작품은 케르테츠(André Kertész)가 1926년에 찍은 화가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초상사진이다. 케르테츠는 이 외에도 몬드리안에 관한 여러 점의 사진작품을 남겼는데, 이 작품은 몬드리안 개인의 온전한 표정과 포즈를 담고 있다. 케르테츠 자신의 예술적 비전이나, 심지어 모델이 된 화가의 예술 세계와는 무관하게, 여기에는 한 인간이 취하고 있는 순수하게 개인적인 포즈와, 그로부터 피어 오르는 그의 인격 전체의 분위기가 감돈다. 그의 사유(예술)와 전혀 호응하지 않는 비뚤어진 코와 약간 왼쪽으로 일그러진 얼굴 균형,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듯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히스테리컬한 손가락, 순수해 보이면서도 어쩐지 (아니 그래서 더) 고집스러운 지성을 품은 시선, 사회적 계급과 소박한 성품이 공존하는 듯한 옷차림, 단정하면서도 비뚤어진 넥타이, 넥타이를 꽉 조여 매어 주름진 와이셔츠, 그리고 낡아 보이는 외투, 날렵하면서도 안정되어 있지 않은 자세, 그리고 약간 경직된 자세 때문인지 움츠러든 목, . . . 이러한 시각적 요소들은 한 개인이 예술이라는 제도 속으로 흡수되기를 거부하고, 온전한 자신을 주장하고 있는 완고하기 그지없는 존재론적 무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사진은 사물의 거죽 즉 외양을 포획하는 일에 만족하는 매체라는 생각은 구시대적이다. 사진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 앞에 제시한다. 수잔 손탁(Susan Sontag)의 말에 따르면, 사진에는 "우리가 놓쳐버린 10%"가 있다. 만약에 진실이라는 것이 우리의 상상 안에 있지 않다면, 틀림없이 우리를 빠져나간 그 10%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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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생전 모습이라고 한다. 신이 죽어버린, 아니 새로운 신이 탄생한 현대의 악취가 견딜 수 없어 무덤 속에서 출몰한 유령이 찍힌 듯 하다
가만히 보면 아우라(aura)가 느껴지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벤야민은 기술복제로 인해 아우라가 사라졌다고 말했지만, 반대로 기술복제는 아우라를 생산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 의심은 어쩌면 놀라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믿어지지 않는다" 혹은 "믿을 수가 없다"는 말만큼 믿음에의 열망을 극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정말로 그 니체일까? 그 아름답기 그지없는 아포리즘의 대가인 백년도 넘은 바로 그 니체일까? 이제 그 의구심을 확인하기 위해, 아니 오히려 의구심을 일소하고 싶어 근거없는 기억들이 마구마구 솟아나기 시작한다.

"예전에 어디서 얼핏 듣기로, 니체는 생전에 한번도 저렇게 긴 비스마르크 콧수염을 기르지 않았다고 하던데. 그도 그럴 것이 제2제국을 독일의 재앙이라고 생각했던 니체가 아닌가? 사진에서 우리가 흔히 보던 콧수염은 새벽녘을 바라보는 듯한 총명한 시선의 옆모습과 함께 그의 아우라를 창출하기 위해 덧칠한 픽토그래프(pictograph)였다고 하던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잘못된 기억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은 나의 기억착오 혹은 소문착오를 오히려 증명하듯, 상상 속의 그 니체, 꼬장꼬장하게, 근엄하게 기른 콧수염의 니체를 우리 앞에 제시한다. 어쨌든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이어서 영상 속의 니체가 진짜(?)였으면 좋겠다. 그 마저도 아니라면 삶이 얼마나 지리멸렬해질까? 그의 모습이 진짜이든 가짜이든, 니체의 영상을 바라 보며 내가 마치 그림의 진본성(authenticity)을 의심하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사상(思想)의 아우라가 테크놀로지를 압도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저 영상이 우리 앞에 드러난 이상, 그 촉각적 실체가 확인된 이상, 이제 그의 육체는 현재적인 것이 되었다. 그가 출몰한 것이다.
Posted by huun

최근에 학부생들에게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잘 알려진 논문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을 읽히고 있다. 이 텍스트 말고도 학부생이 읽기에는 다소 버겁다 싶은 텍스트를 여러 개 선별해 놓은 상태이다. 어떤 점에서 이 시도는 모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발표자를 비롯해서 여러 학생들이 읽는 가운데 어려움을 호소한다. 글의 이해를 위해 마르크스(Karl Marx)나 미학 전반에 관한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는 그 내용은 고사하고, 영문 해석조차 버거워 하는 것 같다.


수년 전부터 느끼고 있는 징후가 하나 있는데, 학생들의 독서 능력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식의 문제이기도 하고, 또 언어(모국어, 외국어)를 처리하는 기술적 수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텍스트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벤야민이 자신의 글에서 그렇게 썼듯이, 현대의 기술매체가 젊은 학생들의 지각패턴을 급속도로 바꾸어 놓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대상이나 이미지에 오랫동안 머물지 못하는 이 신 인류학적 지각 패턴의 문제는 점차 독서가 불가능해지고 있는 상황으로 치닫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벤야민은 기술복제라고 하는 사회 역사적 환경이 "현대적 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동시에, 그와는 반대로 낡은 이데올로기들 즉 마르크스식으로 말해 신비적 외피를 "청산"해 줄지도 모를 것이라고 아주 "모호하게" 믿고 있었다. 물론 정치적인 입장에서 보면 있을 수 있는 믿음이다. 확실히 테크놀로지는 새로운 지각을 탄생시켰고, 그 지각은 낡은 가치들을 낯설게--너무나 낯설어서 비판적이 되기 보다는 오히려 혐오의 감정이 들게 하는--바라보기 시작했고, 그럼으로써 신비적 외피에 감싸여 몽롱한 미학적 분위기에 취해 있었던 서구인이 그리고 최근엔 동양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편, 벤야민 자신이 지적했던 그 위기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도 알고 있던 바, 존재와 사물로부터 "실질적 지속"(substantive duration)이 제거되는 문제, 다시 말해 어떤 실제적 존재가 태어나서 그 자신의 고유한 시간(역사성)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서서히 축적되어 그의 실질적 존재성을 증언해 줄 수 있는 "증언적 가치"(testimonial value)가 그 존재로부터 제거 되는 문제는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존재를 증언해주고, 그것의 긍정성을 확보해주고, 궁극적으로 존재의 본질을 보존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 실질적 지속이다. 그리고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그 실질적 지속이 윤리적 판단의 근거로서 유효할 수 있도록, 그것을 현시하는 능력이 바로 독서(reading)가 아닌가? 벤야민이 이 사실을 감안하여 말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현대적 테크놀로지가 사람들의 지각에 끼친 영향은 낡아빠진 상부구조를 청산할 수 있는 정치적 가능성 보다는, 오히려 독서능력의 박탈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형태의 독서 테크놀로지가 있다는 말일까? 아니면 독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있다는 말일까?


그 어느 때 보다도 독서가 필요한 시대이다. 냉소적이 되어가는 정서를 바로잡기 위해. 그리고 더 본질적으로는 빼앗긴 시간을 되찾기 위해.

Posted by huun

벤야민(Walter Benjamin)의 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한 국왕이 어릴적 맛보았던 산딸기 오믈레트를 다시 맛보고 싶어, 유능한 요리사를 불러 명령하였다.

50여년 전 짐의 선왕은 동쪽에 있는 나쁜 이웃 왕과 전쟁을 했었지. 그때 그 왕이 싸움에 이겨 우리들은 도망을 쳐야만 했어. 그래서 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망을 쳐 드디어 어느날 어느 어두컴컴한 숲속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 우리는 숲속에서 길을 잃어 허기와 피로에 지쳐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어느 조그만 오두막을 발견하게 되었지. 그 오두막에는 한 노파가 살고 있었는데, 그 노파는 뛰어나와 우리를 반기면서 손수 부엌에 나가서 곧 무엇을 들고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산딸기 오믈레트였어. 내가 이 오믈레트를 한입 입에 넣자마자 나에겐 기적처럼 힘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고, 또 새로운 희망이 샘솟는 것 같았어. . . . 그러나 짐이 훗날 이 요리가 생각이 나서 짐의 전 제국을 뒤져 그 노파를 찾아보게 했지만 그 노파는 물론이고 그 노파의 산딸기 오믈레트를 요리해 줄 만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어. 그대가 만약 짐의 이 마지막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면, 짐은 그대를 사위로 삼아 이 제국의 후계자로 만들걸세. 그러나 만약 나의 기대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면 그대는 죽어야만 하네.(『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2000, 24-25쪽)

그러나 요리사는 한참을 생각 하더니 다음과 같이 말을 하였다.

폐하! 정 그러시다면 교수형리를 곧장 불러주십시오. 물론 저는 산딸기 오믈레트 요리법과 하찮은 냉이에서 시작해서 고상한 티미안 향료에까지 이르는 모든 양념을 훤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오믈레트를 만들 때 어떻게 저어야 마지막 제 맛이 나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폐하! 저는 죽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제가 만든 오믈레트는 폐하의 입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폐하께서 그 당시에 드셨던 모든 양료(養料)를 제가 어떻게 마련하겠습니까? 전쟁의 위험, 쫓기는 자의 주의력, 부엌의 따뜻한 온기, 뛰어 나오면서 반겨주는 온정, 어찌 될지도 모르는 현재의 시간과 어두운 미래--이 모든 분위기는 제가 도저히 마련하지 못하겠습니다.(같은책, 25쪽)

결국 요리사는 목숨은 건졌지만 파면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간혹 벤야민을 신비적이라고, 독일인 답지 않다고 말들을 한다. 그들이 주로 객관화된 현실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벤야민의 글에 짙게 배인 베르그송의 영향탓이 아닐까 싶다. . . 아우라! 잘라내거나 요약할 수 없는 그 잠재적 시간!

Posted by huun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종종 브레히트(Bertolt Brecht)를 방문하였다. 그들은 여러차례에 걸쳐 카프카(Frantz Kafka), 루카치(George Luka'cs), 독일, . . 등에 관하여 토론과 대화를 했는데, 그것은 사실 토론이나 대화였다기 보다는, 으레 친한 친구들이 모이면 그렇듯이, 또 그렇지 않으면 친해질 수가 없듯이, 말하자면 각자들의 생각을 꺼내놓고는, 서로 얼마나 다른지, 또 얼마나 같은지를 가늠해가며, 그들의 최종 목적인 공통의 다짐 같은 것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1934년 6월 24일에 벤야민은 브레히트를 방문하였다. 그는 브레히트가 소유하고 있는 서재의 천정을 떠받치고 있는 대들보에 다음과 같이 적힌 문구를 보았다: "진실은 구체적이다!"

브레히트는 이 문구에 대한 대답으로, 그 위에 또 이렇게 적었다: "나 역시 또한 이 말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내 서재였다면, 나는 맨 아래에 이렇게 적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것은 언제나 모호하다!"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