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회색정치

영미문학, 특히 영국문학의 핵심을 ‘모호성’이라고 규정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정도로, 이들 문학사를 뒤져보면 모호성을 추구하는 작가들이 아주 많다. 너무나 심오해서 무시무시한 회색빛의 대자연에 경도 되었던 멜빌(Herman Melville),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흐름에 실려 자신의 이득을 취한다는 “현명한 수동성”(wise passiveness)이라는 그야 말로 모호한 능력에 주목했던 워스워드(William Wordsworth), 마치 범신론적 신처럼 뚜렷한 […]

선악의 열매

선악의 열매

스피노자에 따르면 윤리를 ‘금지’와 ‘명령’의 질서(~하지 말라)로 이해하는 것은 자연의 운동과 원인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한 것과 ‘악’한 것을 판별하는 가치의 종교적 결정 역시 존재의 운동과 원인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아담이 열매의 의미를 금지와 명령으로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그가 “신은 어째서 열매를 금지 했는가?” 또는 “금지된 열매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

스피노자를 이해하기 위한 개념 윤곽

의식, 가치(선악의 가치), 슬픈 정념에 대한 비판. 사유, 좋음-나쁨, 기쁨에 대한 옹호. 유물론자, 비 도덕론자, 무신론자로서의 스피노자. 1) 유물론자로서의 스피노자: 의식이 아니라, 신체(그리고 이를 긍정하는 사유)를 새로운 모델로 제시. 2) 비 도덕론자로서의 스피노자: 선-악이라는 도덕적 본질의 가치를 통해서가 아니라, 좋음-나쁨이라는 존재의 양태를 통해 세계를 이해. 3) 무신론자로서의 스피노자: 신에 정체되어 […]

의식에 대하여

의식에 대하여

들뢰즈(Gilles Deleuze)가 스피노자의 윤리학에서 도출한 “의식”의 개념은 이러한 것이다. 의식은 어떤 행위와 작용의 결과로서 주어진 실재를 하나의 전체로 이해한다. 그러나 의식은 전체를 이루는 “살아있는 부분들”이 서로 결합하거나 해체되는 관계들의 원인과 본질(원인들의 질서)은 이해하지 못한다. 원인과 본질은 이해하지 못하고 그 결과로서 주어진 전체만을 수용하기 때문에, 의식은 “부적합한 관념들, 혼란스럽고 절단된 관념들, […]

관계와 의미

관계와 의미

스피노자가 가치를 판단함에 있어 선과 악을 좋음과 나쁨으로 치환했다면, 좋음과 나쁨은 어떻게 구분되는 것일까? 즉 어떤 대상들에 대해 그 가치를 판단할 때, 우리는 어떤 근거로 그 대상을 좋은 것 혹은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좋음과 나쁨은 절대적 가치로서의 ‘좋음'(선)과 ‘나쁨'(악)이 아니라 상대적 결정에 의존하는 가치이다. 내가 어떤 대상을 ‘좋다’고 […]

관계와 죽음

스피노자에 따르면 죽음은 ‘독립된 개체’나 ‘닫힌 체계’의 관점에서만 성립하는 개념이다. 신의 관점에서 볼때 죽음은 불합리하며 심지어 불가능하다. 스피노자는 죽음을 이렇게 생각한다: 죽음이란 신체를 이루는 부분적 요소들이 더 이상 그 신체를 유지하는 관계를 가지지 않을 때이다. 서로 다른 질서에 속하는 부분들이 특정한 관계를 맺으며 특정한 개체를 구성하는데, 이 개체를 특징 짓는 […]

거세된 이아고의 슬픔에 대한 스피노자의 대답

거세된 이아고의 슬픔에 대한 스피노자의 대답

가치를 선과 악으로 구별하지 않고 좋음과 나쁨으로 구별하는 것은 가치를 순수 형식적 관계로 표면화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에 따르면 악이란 사물의 본성을 이루고 있는 부분들의 ‘관계의 해체’이다. 그러나 더 본질적으로 악은 새로운 관계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신의 관점에서 보면 관계들의 해체(악)는 다른 결합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관계들로의 이행이다. 절대적 […]

미움에 대하여

최근에 관찰한 사실들을 통해 새삼 실감하고 깨달은 니체의 진리: 미움은 무능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무능해보이지 않으려면, 출세를 위해 밤이 새도록 해대는 삽질 만큼이나, 아니 그 보다 더, 미워하지 않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비판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면, 그 비판이 미움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미움과 싸우기 위한 것인지를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정감(affectio)과 정동(affectus)

정감(affectio)과 정동(affectus)

정동(affects, affectus)은 몸체 안에 내재하는 시간의 비의식적 흔적이다. 흔적일 뿐만 아니라 몸체의 변화에 따라 표면으로 피어오르고 사라지는 효과이자 자취이다. 이에 반해 affectio, affection은 몸체 내부의 이러한 정동에 대한 감각, 양상, 작용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베르그송이 “정동적 감각”(affective sensations)이라고 불렀던 점을 참고하여, 이를 ‘정감’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정동의 변화 양상이나 […]

가시성의 역설

자기 자신을 타인 앞에 또는 밝은 곳에 드러내거나 과시하는 것은 자신의 위상을 제한(혹은 부정)하는 역설적 상황을 초래할 수가 있다. 드러내 보임으로써 그 자신이 자아낼 수 있을 모든 신비한 가능성의 힘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푸코(Michel Foucault)가 지적했던 권력에 있어서의 “가시성(visibilité)의 역설”이다. 앙시엥 레짐(ancient regime)의 전제권력은 보여주는 일에 열정을 쏟아 부은 권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