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성장하는 것? 아니면 과거와 전통과 관습을 보존하는 것? 그래서 한편으로는 풍요와 부의 시대를, 다른 한편으로는 안정과 질서의 시대를 만드는 것? 어떤 점에서 우리 시대에 성장과 보존은 모순처럼 보이면서도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엮여있다. 특히 그것이 어떤 소수의 견해를 대변하는 경우라면 더욱 더.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때아닌 명상』(Unzeitgemässe Betrachtungen, Untimely Meditations, 1873-1876)에서, 삶에 도움을 주는 역사의 서술방법을 세 가지로 나눈 바 있다. 역사가 본질적으로 순수한 지식일 수는 없으므로, 역사 그 자체의 세 가지 방법을 언급함으로써, 그는 자연스럽게 현재적 삶의 세 가지 양태를 지적한 셈이다. 그의 말을 따라가보자.

세 가지 관점에서, 역사는 인간의 삶 속에 속해 있다.
(1) 능동적이고 투쟁적인 강자의 역사
(2) 보존하고 경배하고 찬양하는 인간의 역사
(3) 고통 받으며 해방이 필요한 인간의 역사

이렇게 세 가지 관점은 니체가 언급한 세 가지 역사(혹은 연구방법)와 일치한다.
(1) 기념비적 역사
(2) 골동품 애호가의 역사
(3) 비판적 역사(들뢰즈는 미국영화를 설명하기 위해 이를 변형시켜, '윤리적 역사'라고 불렀다)

기념비의 역사는 능동적이고 힘있는 인간의 관점에서 본 역사이며, 그러한 인간을 정당화하는 역사이다. 대단한 전투를 치른 인간, 모범이 되는 인간, 만인에게 교훈을 주고 위안을 주는 인간, 평범하지 않은 인간의 역사, 즉 "쉴러(Schiller)의 역사"이다. 기념비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 모든 시간을 정점(culminating point)으로 환원하고, 가장 높은 것의 위대함으로 세상의 구석구석을 설명하려는 야심이다. 따라서 그 정점에 세워진 기념비의 힘과 가시적인 업적의 크기가 과거의 느낌의 정도를 좌우한다.

이러한 역사에서는 사소한 것에 대한 관심이나 꼬치꼬치 캐묻는 습관을 싫어한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세상을 보다 통 큰 진보로 고취하는 일에 열중하여, 괜히 어슬렁거리거나 맴도는 게으름뱅이를 싫어하며, 예술의 다성(多聲)과 산만(散漫)에서 쾌락을 얻는 영혼을 경멸한다. 목표도 동기도 양태도 분명치 않은 모호한 행동들이나 사소한 몸짓들, 그래서 열등해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도 않고 저 뒤에서 세상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기 때문에, 마치 브뤼겔의 그림에 펼쳐진 중층지대처럼, 산 꼭대기의 위대한 기념비 주변에서 구름처럼 육중한 대기를 형성하며, 이 위대함이 불멸로 나아가는 길을 방해하고, 기만하고, 축축하게 하고, 질식할 만큼 가로막고 있다. 따라서 이들을 모조리 거두어야만 한다.

과거가 기념비로 세워진 찬란한 산맥들 즉 위대함의 연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산맥의 정점들이 수 천 년에 걸쳐 서로 유사하고 무엇인가 상통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서로 조우한다고 생각한다. 현대인은 그들을 닮아야 하며, 그들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과거의 위대한 시간이 다시금 태어나 되살아나게 해야 한다. 그러나 니체에 따르면 이 높은 곳에 위치한 "기념비들은 영원해야 한다는" 불멸에의 요구 때문에, 그 산맥 아래에는 높이 오르지 못한 사소한 존재들의 크고 작은 고함과 울부짖음이 있다. 기념비적 역사는 정점에 올라 가장 높이 빛나는 것만이 존재한다고 억지를 부리는 가운데, 그 반대자들이 "그렇지 않아!" 라든가 "기념비는 만들어지지 말아야 한다!"고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대단한 업적, 건물, 탑, 깃발들을 우러러 보고 닮아가느라고, 이들은 현재적 삶의 초라함에 대한 비난의 눈총으로 질식할 것만 같아 숨이 차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기념비란 잉여의 울부짖음이다.

이러한 과거인식, 즉 이전 시대의 정전(canon)과 고귀한 것에 열광하는 정신상태가 필요한 이유는, 니체에 따르면, 그로부터 다음과 같은 유추가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위대함이 이전에 존재했다면 현재의 모든 사건 속에서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유추는 "현재 자신이 어쩌면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있지는 않을까라고 하는 회의감을 불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거는 마치 현재의 마취제 혹은 신경 안정제처럼 작용한다.

여기에 기념비적 역사의 근본적인 모순이 있다. 마취제로서의 과거는 기념비(혹은 그 가치)를 부정한다. 거추장스러운 실재를 경멸하는 위대한 정신만이 살아남아 그들만이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혹은 기념비를 창조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듣지 않을 수 없는 잉여의 울부짖음이 현재적 과거 속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면, 기념비의 역사적 조건으로서의 고난과 시련과 차이를 동반한(그래서 기념비가 더 값지고 귀한) 진정한 경주, 진정한 전쟁이 어떻게 가능해질까? 이것이 니체의 탄식이다: 똑같은 샘플과 모델로부터 배운 지식이란 얼마나 덧없고 나약한가! 그 유비는 또한 얼마나 부정확할까! 그 비교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차이가 간과될까! 과거의 특이성이 현재의 일반성으로, 혹은 그 반대로 현재의 특이성이 과거의 일반성으로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억지로 끼어 맞추어질까! 그리하여 그 모든 날카로운 구석구석과 모서리들이 동일한 반복으로 일치되기 위해 얼마나 부서져야 할까!

똑같은 동기와 똑같은 구원자와 똑같은 파국과 똑같이 결정된 간극으로 역사가 되돌아오는 것이라면, 진리는 차이가 중화된 그러나(아니 그래서 더 쉽게) 모방할 가치가 있다고 칭송되는 도상적(iconic) 범례에 불과하다는 것이 니체의 생각이다. 그것은 일반의 박수와 갈채로 승인된 기념비적 '결과'이다. 그럼에도 이 모범은, 그것의 진정한 원인인 잠재적 잉여들의 희생아래, 그들의 울부짖음을 동력으로 하여 산출된 결과이다. 기념비의 역사가 그 근본적 원인과 점점 멀어지기 때문에, 니체는 이를 "결과들의 컬렉션"이라고 불렀다. 민속축제, 종교적 행사, 군사적 기념일, 문화재, 건출물, . . . 이러한 모든 기념비들에 대한 찬사는 결과 그 자체에 대한 맹목적 열광이며, 진취성이라는 이름을 가슴에 떡 하니 붙인 부적이라는 것이다.

눈에 잘 띄는 곳에 우뚝 솟아 올라 모방하고 따를 가치가 있는 것만이 역사책에 쓰여지는 한, 역사는 결코 새로운 것으로 변하지 않으며, 더 아름다운 것으로 재해석 될 수도 없다. 따라서 "신화적 허구"와 구별이 어려워질 것이다. 세상의 자질구레한 모든 것들이 하나의 빛으로부터 파생하고, 그 빛을 닮아야 하기 때문에, 그 빛을 머금은 과거는 우리의 시야를 멀게 하는 해악이 된다. 닮아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거나 닮아야 하는 것만큼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도 없다. 시대정신을 표상하는 상징(인간이든 사물이든)들이 산맥처럼 봉우리를 형성하여 서로 서로 닮은 꼴로 수 천년 동안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을 철석같이 믿는 순간, 현재의 위대한 활동과 포부와 욕망은 기념비라고 하는 과거의 가면과 무대의상에 의해 탄압을 당한다. 니체에 따르면 기념비적 역사란 당대의 힘과 위대함을 혐오하는 열등한 영혼이 그 추한 안색을 들키지 않기 위해 호들갑을 떨며 연막을 뿌리는 과거에 대한 과도한 찬사이다. 이 찬사로부터 역사의 의미가 뒤집힌다: "죽은 자가 산 자를 묻게 하라!"

한편 두 번째의 역사가 있다. 이것은 기념비가 아닌 과거 그 자체를 신봉하는 보수적인 인간을 위한 역사이다. 그는 과거의 경배를 통해 현재의 삶에 감사한다. 향수도 아닌 이 특이한 과거에의 집착은 수 천년 전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증거들을 보존하는 것으로 실천할 뿐만 아니라 후세대에 남겨줄 조건들을 재생산 하는 것을 삶의 과업으로 여긴다. 삶이란 과거에 바쳐진 헌정사 혹은 봉헌물 외에 그 무엇도 아닌 것이다.

관습적이고 전통적인 가치를 옹호하고 강조하려는 이 영혼은 결국 골동품에 대한 사랑의 역사를 배양하기에 이른다. 그에게는 증거가 필요하고, 증거란 직접 잡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상이 쓰던 가구나 조그마한 기구들을 소유하는 것이 그에게는 과거의 영혼과의 교접이며 배움의 의미 그 자체이다. 물건에 사로잡힌 그의 물신주의적 영혼은 과거에 쌓아 올린 벽, 성문, 속기록, 일기, 유물, 풍물, 행위의 수단들, 친숙한 관습들, 태피스트리, 의상, 보석, 개인물건들로 환원된 과거의 시간을 바라보며 잃어버린 흔적의 향기를 느낀다.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자신의 힘, 목적, 열정, 어리석음, 나쁜 버릇을 재발견한다. 가령, 니체에 따르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정신이 이러한 취향과 매력을 대표한다.

이 골동품 애호가의 경배 정신의 가치는 기념비적 역사의식과는 반대로 그 겸손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튀지 않은 조건들 심지어는 무미건조한 환경들로부터 기쁨과 만족을 느낄 줄 아는 개인이나 집단의 소박한 정서에 대한 이해와 긍정이 이 역사의식의 정수이다. 역사가 대우를 덜 받았던 인종이나 소박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살았던 거주지역과 물건들 그리고 삶의 직접적 편린들을 되돌려주고, 그들 자신의 전통을 연결해주고, 그들을 바로 거기에 살게 해주며, 그들을 안주 없는 유랑과 방랑으로부터 막아주는 것만큼 삶에 봉사하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물론 개인을 집단과 환경에 고정시키거나, 자질구레하고 고단한 일상의 결과들로 환원하여, 그를 어딘가에 뿌리박게 하는 것은 심각한 곡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나름대로 건강하고, 또 어떤 점에서 공동체에 유익한 것이기도 하다. 유목민들이 그렇듯이 방랑과 모험의 결과들을 경험했던 사람들, 조상과 선배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고 끊임없이 고결한 것만을 쫓아 다니는 경계 없는 코스모폴리탄은 이 사실을 잘 안다. "뿌리에 매달린 나무열매의 느낌, 성장이 제멋대로나 우연이 아님을 아는 행복감"이 무엇인지를.

그러나 골동품 애호가의 역사는 항상 그 비전의 폭이 좁다. 이것이 니체의 생각이었다. 과거 삶의 복원에 대한 물신주의적 열망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몇 가지 지식을 너무 가깝게 들여다보고, 그것의 전체적 맥락으로부터 떼어내어 고립시킨다. 이러한 편협하고도 소심한 시야는 서술하고 있는 대상이 가지는 가치의 경중을 시간 전체의 견지에서 판단할 수 없게 한다. 그의 취향에는 모든 것이 귀중하고 똑같이 중요하게 취급된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과거든 각각 공정하고 따로따로 다르게 구별해야 하는데도, 그 가치와 비례에 있어 아무런 차이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이 또한 기념비적 역사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과거화 혹은 과거의 현재화라는 위험에 노출되어있는 것이다. 그렇게 골동품에 사로잡혀 차이의 힘을 간과하는 개인은 전적으로 자신의 취향의 비례에 의거하여 과거를 들여다본다. 

특이한 비전의 수준에 속하는 것을 무차별적으로 경배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 뿐만 아니라, 과거의 것에 고착되어 새로이 다가올 것을 거부하고 적대시하는 습관이 감각적으로 굳어지면, 마치 순수지식의 영역에 오래 전부터 안착해 있는 안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역사는 더 이상 삶에 봉사하기를 멈추고 존경이라는 명목으로 과거를 다루듯 현재와 미래의 더 위대한 삶 조차 박제해버린다. 골동품 애호가의 역사가 더 이상 현재의 생생한 삶에 열정을 불어넣지 못하게 되는 순간 그 자체 스스로 퇴행적이 된다. 그러면 그 경배심 또한 시들어 버릴 것이다. 순수지식의 허황된 그리고 공허한 영역에 안주한 학자들이 존경심이나 경배도 없이 습관적으로 과거의 궤도를 어슬렁거리며 이기적이고 자기만족적인 배회에 인생을 낭비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맹목적인 수집광과 독서광의 불쌍한 드라마, 남이 말했거나 존재했던 모든 것을 모아대는 반추동물의 드라마를 보게 된다. 이러한 영혼은 어딜 가나 곰팡이 냄새를 풍기게 되어있다. 자신의 귀한 재능과 고결한 욕구를 그야말로 낡은 것에 대한 욕망으로 변질시키고, 때로는 너무 깊이 들어가 단지 전기(傳記)의 증거에 지나지 않는 물건더미가 쌓여가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념비의 역사와 성격이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골동품 애호가의 역사의 심층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삶의 창조적 가능성의 배제가 있다. 골동품 중독 역사관은 "삶을 보존하는 법만 알지, 창조하는 법은 모른다." 그것은 언제나 새롭게 다가오는 것을 평가절하하고, 경배를 미루어두거나 불경스럽게도 거부하기조차 하는 능동적 인간을 불구로 만든다. 심지어는 기념비 역사의 모토인 위대함과 성장조차에도 관심이 없다. 오래된 무엇인가는 항상 불멸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선조들의 관습과 종교적 믿음 그리고 전해 내려온 정치적 권위의 오랜 시간 겪어온 무게와 깊이 그리고 그 동안 받아온 찬탄과 경이의 양이 얼마인지를 상상해 본다면, 그 귀한 것을 새롭고 낯선 것으로 대체하거나 현존하는 단순한 사실처럼 보이는 것으로 환원하려는 시도가 대단히 건방지고 뻔뻔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니체는 삶에 봉사하는 역사의 세 번째 방식을 '비판적 역사'라고 불렀다. 이러한 글쓰기는 더 이상 과거에의 종속도 고착도 아닌 해방을 욕망한다. 현재의 부당함과 폭력과 오류를 비판하기 위해, 비판적 역사가는 현재를 낳은 과거로 돌아가 그 원인이 되는 싹을 잘라버릴 것을 독려한다. 독자의 전달이 아니라 장본인의 말을 직접 들어보는 것이 생생하리라.

"과거를 깨부수는 힘을 가져야 한다. 살아가려면 과거를 전유하고 분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과거를 심판대로 끌고 와서 가차없이 질문하고 비난을 퍼붓는다. [. . .] 과거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인간의 과거이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것 안에서 힘과 나약은 언제나 필멸의 운명에 처한 인간사이다. 인간은 언제나 위대한 힘과 인간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심판이 의미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며, 그 판결을 선언하는 자비도 아니다. 그것은 삶 그 자체, 그 희미하고도, 모호하고도, 끊임없는 자기 욕망의 힘, 바로 삶 그 자체 때문이다. [. . .] 그 판결은 언제나 무자비하고 불공정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순수한 지식의 발로에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 . .] 생겨난 모든 것은 파괴되어 마땅하다. 따라서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수도 있다. 살아가려면 상당한 힘이 있어야 한다. 인생이 얼마나 부당한지를 잊으려면 또한 상당한 힘이 필요하다. 루터 자신은 세상이 단지 신의 망각으로 존재했을 뿐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만일에 신이 "포병부대"를 떠올렸더라면, 결코 세상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이 같은 삶은 망각을 이용하여 이 망각의 일시적 파괴를 요구한다. [. . .] 과거가 비판적으로 분석될 때, 그 뿌리를 잘라낼 수가 있으며, 모든 경건함을 넘어 나아갈 수가 있다. 그 과정은 항상 위험하다. 심지어 죽을 때까지. 그래서 이런 식으로 과거를 심판하고 전멸시킴으로써 삶에 봉사하는 사람들 혹은 그 시대는 언제나 그 자신이 위험에 처해있고 다른 이들을 위험에 처하게 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이미 이전 세대의 산물이며, 또한 그들의 오류와 열정과 범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 사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비록 그 오류들을 비난하고, 우리 자신이 그들로부터 탈피했다고 생각할지라도, 우리가 그들로부터 태어났다는 사실을 빠져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기념비적 역사는 과거를 이용하여 정복의 위대함을 설득하고 정당화하는 과거의 현재화이다. 반면에 골동품 애호가의 역사는 과거에 안주하고 과거를 보존하여 현재를 과거의 현재로 만든다. 비판적 역사는 현재의 부당함으로부터 받는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과거를 심판함으로써 과거를 미래의 현재로 남김없이 바꾼다.

우리에겐 업적과 기념비에 대한 두서 없는 열광이 한 쪽을 사로잡고 있고, 개인의 소박한 그러나 맹목적인 순응주의가 우리의 또 다른 한 쪽을 사로잡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복의 힘도 아니고, 그렇다고 냉소적이고도 비굴한 평화도 아니다. 평화라는 이름조차도 이제는 어떤 구실이 되어버렸고, 기만과 착취의 한 전략이 되어버렸다. 과거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 그것은 다름 아닌 비판이 아닐까? 또한 비판받아 마땅한 그 과거의 수혜자들의 정당성의 단죄와 그에 대한 거부가 아닐까? 수혜자들이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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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말해, 역사란 비개인성에 도달한 상태이다. 그것은 나의 현재적 관심과 필요와 이해관계의 관점에서 벗어나, 존재를 그 자체로 보려는 노력이고, 그 가능성에 대한 비젼이다. 오로지 이 방식만이 모든 존재들을 종속 상태로부터 해방시키고, 그들 자신의 고유한 존재성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한다. 이것이 역사성의 정신적 토대이자 조건이며, 우리와 같은 고매한 취향의 소유자를 흥분시키는 유일한 시간이다.

미국인들이 만든 문화 상품은 언제나 굉장한 규모와 테크놀로지로 우리를 놀라게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우리를 실망시킨다. 멜 깁슨이 또 등장했으니, 그의 얘기를 잠깐 해보자. 그의 영화에 대해서는 예술적인 관점에서보다는 상품의 관점에서 얘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모두들 박수를 치고 있으니, 한번 따져볼 수 밖에.

그의 영화 이미지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가 대단한 강박과 집착의 소유자인 것처럼 보인다. 그의 강박적 태도의 요체는 한 마디로 말해, "실재적인 것"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말할 것도 없고, <아포칼립토>에서 그가 주로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언어와 역사의 고증이었던 것 같은데(인물들, 건축, 공동체, 문화, 제례, . .), 고증에 대한 미국인들의 열망을 나는 잘 믿지 않지만, 어쨌든 그의 영화를 보면 바로 생생한 것, 실재적인 것에의 철저하고도 고집스런 집착이 있어 보인다. 긍정적으로 말해 일종의 역사성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도가 아닐까 싶다. 설정된 인물들의 본래의 언어를 영화 속에 그대로 안배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단적인 예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첫 시퀀스에서 보여주었던 그 놀라운 아람어를 듣는 순간, 우리는 경련을 일으키게 된다. 화면 속의 인물들과 예수와 그들을 감싸고 있는 시간 전체가,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내 안에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존재로부터, 바로 그들 고유의 존재로부터 튀어나와 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수와 함께 그 많은 인물들이 모여서 알 수 없는 아람어를 읊조리는 시간 동안, 우리는 정서적으로 혹은 감정적으로 어떤 야수에게 침탈 당한 것처럼, 우리의 내부로부터 요동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순전히 고대 아람어 하나만으로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그 시간은 나와는 완전히 무관한 타자로부터 경험된 것이다. 영화를 보며 우리는 동네 뒷동산이 아니라 진정한 여행을 하고 싶어 한다. 멜 깁슨은 이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멜 깁슨의 인터뷰 내용 한 구절을 들어보자.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처럼 <아포칼립토>를 마야어로 촬영한 건 정말 옳은 판단이었다. 어렸을 때 추억을 떠올려보면 더욱 극명하다. 그 당시 본 것들 가운데, 한 무리의 바이킹이 수녀원을 습격하는 내용의 영화가 있었다. 덩치가 산 만한 바이킹 남자가 천천히 배에서 내려 수녀에게 말을 건넨다. 얼마나 흥분되는 장면이던지, 하지만 내 감응은 바로 다음 순간 산산조각 났다. 바이킹이 영어로 "나는 여기 내 선조들의 도끼를 가지러 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안녕, 난 로스ㅡ앤젤레스 동쪽에서 왔어"라는 말과 똑같이 들렸다. 하지만 만약 그 바이킹이 아주 낮은 음성의 독일어를 사용했다면, 오, 나는 아마 그 자리에 얼어붙어 오줌을 싸고 말았을 지도 모른다.

위 내용을 보면 그는 뭔가를 아는 사람임엔 틀림없다. 그 자신이 한 명의 관객으로서, 그리고 이제는 이미지를 직접 디자인하는 감독으로서, 실재적인 것에 대한 집착과 철저함에 찬사를 보낸다. 모름지기 예술가라면 철저해야 한다. 자신이 다루는 재료의 티끌 하나라도 성의 없이 대충 마무리 지어서는 안 된다. 관객이 문제가 아니다. 하늘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성의 깊이는 곧 예술가의 윤리이다(임권택 감독의 예술에 관한 영화들 대부분은 바로 이 주제를 담고 있다). 남의 작품을 베낀다든가, 적당히 얼버무린다든가, 눈속임을 한다든가 하는 예술가에게 우리가 비난을 하는 것은, 결코 그가 법을 어겼거나 도덕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이 아니다. 바이킹 영화의 영어 더빙처럼, 시시하기 때문에, 우리를 맥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예술적 타락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적 윤리와 예술성은 같은 말이다. 어린 멜 깁슨이 그 바이킹 장면에 실망하면서 감독에게 항의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왜 바이킹의 고유함을 훼손시키는가?"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과연 멜 깁슨이 예술적인가? 그는 정말로 철저한 사람인가? 많이도 필요 없고, 한 가지만 말해보자. <아포칼립토>의 첫 시퀀스와 두 번째 시퀀스는 마야인들의 사냥과 마을 공동체에 관한 긴 내러티브로 꾸며져 있다. 이 두 시퀀스에서 우리는, 고대 마야인이라고 지시된(referred), 원시인들처럼 가죽을 걸치고, 그들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고, 수십 수백의 집단이 각자의 가족을 이루며, 여가 생활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 . . 정확히 미국인들의 가족을 보게 된다. 심지어는 기독교적인 냄새까지 나는 가족의 모습, 헐리웃 영화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그런 행복하고도 건전한 가족의 모습 말이다. 시퀀스가 끝나고, 그들이 단잠에서 깨어나면, 침입자가 쳐들어오지만 않았더라면, 다들 모여 당장에 예배당이라도 나갈 것 같은 그런 분위기의 공동체. 놀랍게도, 철저한 이미지를 추구할 것 같았던 기독교인 멜 깁슨의 말을 한번 들어보자.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였던 디에고 드 란다가 쓴 정말 좋은 책(<유카탄 지역 문물들의 제 관계>1566), . . .  관습과 사회적 습속을 직접 목격하고 쓴 책, . . . 드 란다는 그 책에서 마야 문명과 용기, 절제, 의지, 서로 화합하는 기독교적 미덕을 보여준 원주민들의 모습을 자주 묘사했다. 이는 영화 속 표범 발의 마을을 형상화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영어로 바이킹의 언어를 더빙한 것에 대해 실망했던 그가! 더 무시무시한 더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디에고 드 란다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생략하겠다. 나 역시 오줌을 지릴 뻔 하다가, 그 헐리웃-예배당-oriented 패밀리들을 보는 순간(실은 사냥하면서 미국식 장난을 치던 청년들의 모습이 더 먼저였지만), 완전히 기분을 잡쳤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더 이상 기대감을 접고, 고차원적 흥분을 포기한 채, 헐리웃 액션영화를 보듯, 이미지의 감각적 자극이 주는 진부한 쾌감에만 몰두하며 스크린을 보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중간 부분에서 대단히 감각적으로 보여주었던 마야인들의 희생제의의 경우, 타락한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된 어리석은 대중의 종교적 야만적 열광 쯤으로 해석한 것은, 오히려 현대 서구 사회 특히 미국의 정치-종교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스포츠, 전쟁, 종교, . . 미국의 정치 문화를 비판한 것일까?).

더빙은 우리를 맥 빠지게 한다. 언어 뿐만 아니라 주관성의 더빙은 더 그렇다. 역사에 있어, 문제는 누가 침략을 했는가? 왜 멸망을 했는가?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와 같은 것이 아니다. 언어와 건축물과 육체들의 배열과 운동, 그리고 몇 몇 감각적 이미지들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으로는 충분치가 않다(아니, 오히려 그것은 불가능하다). 진정한 역사성에 도달하려면, 진정한 실재성을 보여주려면, 보다 근본적인 철저함이 있어야 한다. 언어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관점으로부터, 자신의 신념으로부터 벗어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과거는 현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와 과거에 관한 이러한 편협한 관점 속에서 얼마나 많은 오류들이 있었나! 역사적 고증은 기계나 사진 혹은 남아있는 자료들의 감각적 직접성이 아니라, 주관성 내부로부터 시작하는 직접성이어야 한다. 역사는 비개인적 관점에 도달한 상태라고 했던 나의 명제는 바로 이런 뜻이다. 영화는 문학이나 다른 매체와는 다르게,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매체이다. 그러나 그 직접성이란 감각 이미지의 영역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바이킹에게 그들 고유의 언어를 돌려주고자 했던 멜 깁슨 자신의 철학처럼, 영화는 마야인들의 언어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과거 전체를 되돌려 주기 위한 노력이어야 한다는 것! 상품과 예술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술이란 생생하고도 사실적인 것의 소유가 아니라 과거 전체를 되돌려 주기이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만 비로소 예술은 역사적인 것을 구체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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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뉴스(2007년 1월 23일)에는 인혁당 사건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32년 만에 그 사건은 조작되었다고, 사법에 의한 살인이었다고, 사법부가 판결을 내린 것이다. 말하자면, 사법부가 스스로 자신의 범죄행위를 고백한 셈이다(스스로 어떤 처벌을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http://news.kbs.co.kr/article/society/200701/20070123/1288601.html

이 기사를 읽다가 역사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인혁당 사건은 법이 정치에 종속되어 있었던 좋은 예이다. 당대의 특정 권력의 압력에 굴복하여 법이 사실들을 날조하고, 악용하고, 왜곡했다. 수십년이 지나고 난 이후에, 날조와 왜곡으로 인해 비틀어졌던 사실들이 지금은 모두 바로잡힌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현재의 실정이나 목적에 따라 사실을 또 다른 식으로 왜곡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법부의 저 판결은 역사적인 것이고, 또 역사성(historicity)에 도달한 좋은 예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진실을 주장할 때면, "역사에 심판을 맡기겠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이 말은 아주 의미심장한 말이다. 역사가 뭐길래, 도대체 역사에게 심판을 맡기겠다고 하는 것일까?

사법부의 저 판결은 자신의 범죄행위를 고백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정치라든가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심지어는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스스로 자유로워진 상태가 되었음을 스스로 선포한 것이다. 왜냐하면, 저 고백은 다름아닌 스스로 제3자가 되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유신정권 시절의 사법부는 민청학련 관련자들을 (정치적)이해 당사자의 관점(정권이 되었든, 이데올로기가 되었든)에서 사실들을 바라보고 판단했다. 그렇게 사실들은 그의 관점에 의해 비틀어졌다. 제자리에 온전하게 자리잡고 있던 것들이 이 비틀어진 사실들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하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되돌려 놓는다. 사실들도 제자리로 되돌려 놓았고, 그것을 비틀어 바라보던 특정 관점들도 제자리로 되돌아 왔다. 죽은 사람에게는 원한도 사그러들듯이, 당시의 이해 당사자였던 사법부 조차도 제3자가 된 것이다. 현재적 이해와 필요로부터 홀가분한 상태 속에서의 관조! 이것이 바로 역사성이 아닐까? 특정 개인이나 이해관계의 관점 즉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사실들을 그 자체로서, 제자리에 되돌려놓고 바라볼 줄 아는 정신상태! 나는 이것이 역사라고 생각한다. 역사성이란 단순히 시간의 기록이 아니라, 비개인성(impersonality)에 이른 상태를 뜻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조차도 불신할 줄 아는 정신이며, 자신의 신념조차도 비판하고 단념하여, 그로부터 완전히 단절할 줄 아는 태도이다. 거기에는 진정성이 있다. 이러한 태도만이 모든 것들을 그 자신으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뿐만 아니라 특히 자신의 과거사를 정리한다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자신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자유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고백과 반성은 현재적이고 즉자적인 필요관계에 종속된 상태로부터 날아올라, 역사적 존재로서, 시간적 존재로서,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갔음을 선언하는 행위이다. 존재가 참되다! 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