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euze

Christian Metz의 영화기호론 비판

영화 기호론자인 메츠(Christian Metz)는 스승인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의 기호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이미지 자체에 언어적 기호체계가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이를 이론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영화기호론’(a semiotics of the cinema)은 구조주의 언어학이 언어에 대해 구사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영화의 의미작용 메커니즘에 관한 내재적 연구이다. 메츠는 영화를 언어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에 […]

프레임의 외부: 까슈와 태피스트리

프레임에 관한 논의는 자연히 “장-밖”(out-of-field, hors-champ)의 문제로 우리를 이끈다. 들뢰즈에게 프레임과 그 외부의 문제는 지각 가능한 영역과 지각 불가능한 영역, 현실태와 잠재태, 또는 집합과 전체의 구분을 변주한 문제로 볼 수 있다. 베르그송주의자인 들뢰즈는 프레임-외부를 프레임의 “부정”으로 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화면 안과 밖을 구분해서 그 둘이 서로 상보적인 관계를 맺으며 […]

채플린과 키튼: 휴머니즘적 도구주의와 무정부주의적 기계주의

채플린의 코미디 ‘소극’(burlesque)은 계열들의 조우와 충돌의 집합이다. 즉 행동의 계열들이 있고 이 계열들 사이에 다른 계열이 삽입되어 질서 전반이 엉켜 버리는 것이다. 여자와 춤을 추다가 다른 여자의 춤으로 끼어든다든가, 길을 지나가다가 앞에서 다가오는 소년과 마주치면서 소년에게 지팡이를 낚인다든가, 국수를 먹다가 리본이 국수에 떨어져 자신도 모르게 그 리본을 먹는다든가, 세수를 하다가 […]

스트로하임과 브뉘엘: 엔트로피와 영원회귀

스트로하임(Erich von Stroheim)과 브뉘엘(Luis Bunuel)의 차이—개체발생론적 하강과 계통발생론적 반복—에도 불구하고 자연주의의 시간은 모든 개체와 종이 저주를 받은 것처럼 퇴락의 길로 추락하는 과정으로 묘사된다. 물론 지속으로서의 시간은 두 개의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다. 하나는 생명의 질서를 보존하고, 개체와 세계를 분할-형성하는 방향이다. 한편 시간은 분할된 개체들을 액체 환경 속에서 해체하듯이 근원적 평형 […]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animation)은 운동 중에 있는 사물의 기계적 포착이 아니라 상상의 형상을 손으로 직접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애니메이션은 이상적인 포즈(ideal pose)를 구현하는 예술인 회화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이 전적으로 영화에 속하는 이유는 그것을 구성하는 각 컷들이 인물화나 초상화처럼 완결된 형태로 부동하는 이상적 포즈가 아니라, 운동하고 있는 궤적 위에서 불특정한 순간에 포착된 […]

크리스탈-이미지와 돈

자기를 반성하는 제스쳐처럼 보이는 ‘영화 속의 영화나 영화 제작’이라는 자기반영 이미지에 새롭고 특이한 깊이를 부여해주는 근거는 무엇일까? 이를 정당화해 줄 근거가 없다면 그것은 단지 부차적인 방법이나 형식주의적 유희에 머물고 말 것이다. 영화 제작의 불가능을 그린 벤더스의 <사물의 상태>(Der Stand der Dinge)에서는 마치 영화가 자신의 죽음을 인식한 것처럼 우울한 자조에 빠져 […]

지식과 정당화: 메타서사에 의한 정당화

이 글은 료따르(Jean-François Lyotard)의 저작인 La Condition Postmoderne을 해석하면서 지식과 정당화의 문제에 관한 논의를 재구성한 것이다.(주1) 한편에서는 그의 논의를 따르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보존하면서 다른 관점들과 결합하거나 다른 관점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의 책 전체는 지식의 세 가지 정당화 방식을 논의하고 있다. (1) 메타서사에 의한 정당화. 이것은 주로 계몽주의와 관념철학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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