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 Story

Zoo Story

Horn & Hardart, Lexington Avenue. 1954-55 by William Klein
Horn & Hardart, Lexington Avenue. 1954-55 by William Klein

누군가에게 선뜻 말을 건네는 일이 힘들어진 현대인들의 고립은 기계적이고 합리적인 생산을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도록 관념적으로 고안한 ‘욕망의 절약’이나 ‘충동의 금지’에서 비롯된 부산물처럼 보인다. 현대의 노동과 생산방식 안에서 욕망은 수치스러운 것이다. ‘미국의’ 작가 올비(Edward Albee)의 드라마 <동물원 이야기>(Zoo Story,1958)는 언어가 욕망과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이들의 아이러니를 운반하고 교환하는 과정을 재현한다. Jerry의 억지나 폭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언어는 피해자의 분위기와 어조가 지배한다. 언어가 욕망과 맺는 관계 때문으로 보인다.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책상 위의 꽃병을 가리킨다. 나는 그 손가락이 지시하는 꽃병을 본다. 이것이 언어의 본질적 기능이다. 설득과 설명에 의해 보다 민주적으로 의사를 전달한다 해도, 언어에는 불가피하게 그 자체로서 하나의 명령문이 함축되어 있다. 화용론(Pragmatics)에 따르면, 언어는 하나의 수행(performative)이며, 불가능한 것들 간의 직접적인 가교(架橋)이다. Jerry가 구사하는 언어의 표면은 Peter를 압도하고 그에 대한 권력을 세운것처럼 보인다. 단어들을 제시하고 그 안에 자신이 의도한 ‘기의’를 감추고 표상과 상징의 주름들 속에 축적된 막대한 중력으로 상대방을 빨아들인다. 마치 주인인 나의 배려에 의해 당신이 여기에 있다는 듯이. 내가 만든 규칙에 초대되었으니 당신은 이제 그것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듯이. 당신이 취할 수 있는 권리는 오로지 내가 숨긴 기의를 찾아내는 일 뿐이라는 듯이. 그러나 지시에 불응하거나, 특히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때의 파국은 단지 의미 작용의 부재나 지시 관계의 성립 불가능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파국을 통해 출현하는 것은 언어가 내포하고 있는 최후의 내용이다. 명령과 지시는 거부되었다. 정확히 말해 명령이 거부된 것이 아니라 욕망이 좌절되었다. Peter의 냉소는 Jerry의 더 많은 강요와 명령을 낳는다. Jerry의 욕망의 좌절은 이를 보상하기 위해 더 많은 말들을 필요로 하고, 그는 결국 극단적인 에너지의 소비로서 죽음으로 치닫게 된다. 이미 하나의 명령문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언어는 권력자가 아니라 욕망하는 자의 것이다. ‘관계에의 의지’에 사로잡힌 Jerry는 욕망을 수치로 알고 그 게임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활력과 명랑을 포기한 Peter(현대인)의 이면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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